한 프랑스인이 본 한국의 대기업 문화 & '웹월드' 무료수강 대학생/취준생 자원봉사 모집

한 프랑스인이 본 한국의 대기업 문화 & '웹월드' 무료수강 대학생/취준생 자원봉사 모집  
예병일 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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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루브르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나는 80여 명의 기자들 앞에서 엘지 프랑스 법인의 목표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동전화 진동벨이 울려서 꺼내보니 비서의 전화였다. 간담회가 끝나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인사팀 직원들이 내 (법인장) 사무실을 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상무실로 돌아가라는 재빠른 신호였다. 처음에 나는 악의에 찬 장난인 줄 알았다. 형편없는 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한 무례한 방식이어서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런데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상무실로 내 짐을 모두 욺겨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청소 작전의 서막에 불과했다. 2012년 1월2일 오전 8시30분, 직원들에게 신년인사를 이메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이 끊긴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서 컴퓨터가 고장이라고 알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인사 담당자였다.
그녀는 연결이 끊긴 것은 정상이고, 내가 그날부로 더 이상 엘지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통보했다. 불길한 꿈이 악몽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회사가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하 직원에게 내 해고를 통보하게 했으니 말이다. 내가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안도와 서글픔이 뒤섞였다. 시련은 물론 끝나겠지만 내가 회사를 위해서 했던 모든 일은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다. (149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나 사진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커다란 화제가 되곤 합니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오바마가 비가 쏟아지자 혼자 우산을 받고 가다 멈추고 여직원 2명이 내리기를 기다려 셋이 함께 건물까지 우산을 쓰고 가는 장면, 중요한 회의을 하면서 실무진에게 상석을 양보하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경청하는 모습의 사진이 기억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공감을 불러왔던 모습들이었지요. 
 
그런 공감은 오바마의 모습에서 '겸손함'을 보았고, 부하 직원, 아니 '동료'에 대한'존중'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에리크 쉬르데주라는 한 프랑스인이 우리나라의 대기업에 대해 쓴 책을 보며 우리도 이제 '변화'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느껴 몇 구절을 경제노트에 소개해드립니다. 그는 2003년에 영업마케팅 책임자로 엘지 프랑스 법인에 합류한 프랑스인입니다. 좋은 실적을 보여 2006년에 엘지그룹 최초의 외국인 임원(상무)로 승진했고, 2009년에는 법인장까지 되었습니다. 2012년에 엘지에서 퇴사했지요.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인으로서 우리나라의 대기업 생활에 적응하려 애썼고 실적도 올린 그는 엘지에서 퇴사한 후 수필 형식으로 한국의 기업문화를 꼬집는 책을 썼습니다.
물론 몇 년의 시간이 지난데다 퇴사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낀 저자의 글임을 감안해야겠지만, 한 외국인이 본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 대한 '소감'은 잘 수용한다면 우리의 '변화'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400명에 불과한 엘지전자의 임원(상무)가 되자마자 느꼈던 '의전'에 대해 이렇게 썼더군요.
 
"그들(한국인 직원들)에게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직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첫날부터 달라진 의전의 무게로 변화를 실감했다. 프랑스 대기업의 사장들도 그런 대접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것은 즐기면서도 으스대는 것처럼 보이는 의전은 거부했다. 예를 들어 내 물건을 다른 간부에게 들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들은 무척 놀랐다. 나는 그들에게 내 입장을 설명했다. 직함은 바뀌었어도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고. 엘지 프랑스 법인의 부장으로 하던 일을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실수한 게 틀림없다. 자동차에서 내려 공항 대합실까지 내 짐을 내가 들고 가는 일은 소탈함을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라 새로운 지위에 맞게 행동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그 기대를 벗어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95쪽)
 
'존중'과 관련, 퇴사 과정에 대해 쓴 부분도 있습니다. 위에 소개해드린대로 상사가 아닌 부하직원에게 해고통보를 받았던데 대해 커다란 상처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존중'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나는 회사를 나오면서 동료들을 보지 못했다. 새로운 경영진은 송별식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불가촉천민처럼 엘지를 떠났다. 나의 시대가 끝났으니 아무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151쪽)
 
프랑스와 한국은 문화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겸손함'과 '존중'같은 기본족인 덕목들은, 우리에게 부족하다면 이제는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구성원들의 생각도 변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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